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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홍색 리본, 새로운 이야기의 책갈피가 되다

·11분 소요
분홍색 리본, 새로운 이야기의 책갈피가 되다

어제, 아들 맥스가 2년 가까이 다니던 회사에서의 마지막 날을 보냈다.

오늘 점심 무렵, 아들이 어느 식당까지만 데려다 달라고 부탁해 왔다. 돌아올 때는 우버를 타겠다고 했다. 속이 좋지 않아 베트남 쌀국수가 먹고 싶다는 말에, 나는 같이 먹자며 아이를 태웠다.

뜨거운 국물을 사이에 두고 어젯밤 이야기를 들었다. 송별회는 저녁 6시 무렵 시작되었다고 한다. 9시가 넘도록 바에서 술을 마시고, 그 뒤에는 가라오케로 자리를 옮겨 새벽 2시가 되어서야 헤어졌다는 것이다. 주로 같은 파트의 동료들이 모였고, 작년에 퇴사해 지금은 구글에서 일하는 친구도 합류했다고 한다. 그 친구는 요즘 오픈AI와 앤트로픽에서 입사 제안을 받아 수시로 인터뷰를 보고 있다는데, 미국 회사는 한두 번의 인터뷰로 사람을 뽑는 법이 거의 없어 수십 번을 치르게 하는 곳도 있다. 자기 누나와 동갑인 그 친구와 절친으로 지내는 것을 보면, 나이로 위아래를 가르지 않는 언어가 만들어 주는 관계인 듯도 하다.

한 사람이 회사를 떠나는 자리에, 서른 명이 넘는 동료들이 맨해튼에 모여 새벽까지 함께했다.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아이가 지난 2년을 어떤 모습으로 살아왔는지 조금은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얼마 전 나는 아들이 회사를 그만두고 글을 쓰겠다고 했던 이야기를 글로 남긴 적이 있다. 그때만 해도 그것은 아직 미래형의 문장이었다. 다음 달을 끝으로 회사를 그만두겠다는 말. 모두가 직장을 잃을까 두려워하는 시대에, 아들은 스스로 안정된 자리를 내려놓고 보이지 않는 길로 들어서겠다고 했다. 나는 그 선택이 대견하면서도 걱정스러웠다. 영화와 드라마의 작가가 되고, 자신의 각본으로 감독의 길을 가겠다는 꿈은 오래된 것이었지만, 오래된 꿈이라고 해서 반드시 현실이 되어 주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 미래형의 문장이 어제, 마침내 현재가 되었다.

며칠 전이었다.

퇴근하는 맥스를 데리러 나갔는데, 차에 오르는 아들의 손에 커다란 선물 바구니가 들려 있었다. 투명한 포장지 안에는 과자와 초콜릿이 가득했고, 바구니 위에는 커다란 분홍색 리본이 꽃처럼 활짝 피어 있었다.

“이게 다 뭐야?”

내가 묻자 맥스는 지난 1년 동안 자신이 담당해 온 고객사가 퇴사를 앞둔 자신에게 보내온 선물이라고 했다. 그 회사는 맥스 때문에 새로운 고객이 된 기업이었다.

그러면서 아들이 한 가지 이야기를 더 들려주었다.

지금 회사에서 18년 동안 일한 자신의 매니저가, 퇴사하는 직원을 위해 고객사가 이처럼 선물을 보내온 것은 자신도 처음 경험하는 일이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 말을 듣고 나니 눈앞의 바구니가 전혀 다르게 보였다.

그 안에 들어 있는 것은 과자와 초콜릿만이 아니었다. 함께 일해 주어 고마웠다는 인사, 지난 시간을 기억하겠다는 마음, 그리고 한 사람의 일하는 태도에 대한 인정이 담겨 있었다.

회사가 직원에게 보내는 퇴직 선물은 흔할 수 있다. 함께 근무한 동료들이 돈을 모아 선물을 준비하는 일도 드물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서비스를 제공받던 고객이 회사를 떠나는 담당자에게 직접 감사의 선물을 보낸다는 것은 조금 다른 이야기다.

그것은 정해진 업무를 무난하게 처리했다는 것만으로는 얻기 어려운 마음일 것이다.

약속을 지키고, 상대의 말을 귀담아듣고, 문제가 생겼을 때 자기 일처럼 나서고, 함께 일하는 사람에게 믿음을 주었을 때 비로소 가능한 일이다. 회사의 이름 뒤에 가려진 직원이 아니라, 한 사람으로 기억되었기에 받을 수 있는 선물이었을 것이다.

바구니에 붙어 있는 이름을 보니, 내가 보기에는 시애틀 쪽에서 BMW의 서부 지역 업무를 맡고 있는 고객사인 듯했다. 그 회사에서도 맥스에게 함께 일해 보지 않겠느냐는 러브콜을 보냈다고 한다.

부모의 입장에서 들으면 솔깃하지 않을 수 없다.

지금까지 해온 일을 인정받았고, 다른 회사에서 먼저 손을 내밀었으며, 그 길을 따라가면 경력도 이어지고 생활도 안정될 수 있다. 많은 사람이 그런 기회를 성공이라고 부를 것이다. 나 역시 그 제안을 받아들이는 편이 훨씬 안전하고 현실적인 선택이 아닐까 생각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런데 맥스는 그 길로 가지 않으려 한다.

아들이 회사를 떠나는 것은 일을 못해서도 아니고, 사람들과 갈등이 생겨서도 아니다. 더 좋은 직장을 구해 놓았기 때문도 아니다. 자신을 인정해 주는 사람들과 안정된 자리가 있는데도, 오래전부터 품어 온 꿈을 향해 가기 위해 떠나는 것이다.

생각해 보면, 실패한 자리에서 떠나는 것보다 인정받는 자리에서 떠나는 일이 더 어려울지도 모른다.

견딜 수 없어 도망치는 것이라면 떠나야 할 이유가 분명하다. 그러나 잘하고 있고,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있으며, 더 나은 조건까지 제안받는 상황이라면 마음은 수없이 흔들릴 수밖에 없다.

조금만 더 있어도 되지 않을까.

경력을 조금 더 쌓은 뒤에 시작해도 늦지 않지 않을까.

돈을 더 모으고, 생활이 더 안정된 다음에 꿈을 좇는 편이 현명하지 않을까.

그 ‘조금만 더’가 몇 년이 되고, 때로는 한 사람의 평생이 된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맥스가 작가와 감독을 꿈꾼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초등학생이던 아이는 집에 있던 캠코더를 들고 코흘리개 친구들과 영화를 만든다며 돌아다녔다. 중학교 때는 자신이 만든 작품으로 영화제에서 상을 받는 작은 기쁨도 맛보았다. 고등학교에 가서도, 대학에 가서도 그 꿈은 꺾이지 않았다.

대학을 졸업하고 회사에 들어간 뒤에는 그 꿈이 잠시 보이지 않았을 뿐이다.

그동안 아이는 다른 세계에서 자신의 능력을 시험했다. 정해진 시간에 출근하고, 맡은 일을 책임지고, 동료들과 협력하고, 고객의 신뢰를 얻었다. 꿈을 미룬 시간이었을지 모르지만 결코 잃어버린 시간은 아니었다.

작가가 되더라도 사람을 알아야 하고, 감독이 되더라도 수많은 사람과 함께 일해야 한다. 혼자 쓴 한 줄의 문장도 결국 누군가의 마음에 도착해야 하며, 한 편의 영화도 수많은 약속과 협력 속에서 완성된다.

그런 의미에서 지난 2년은 꿈에서 벗어나 있던 시간이 아니라, 그 꿈을 감당할 사람으로 자라난 시간이었을지도 모른다.

고객사가 보내온 선물 바구니는 아들이 지금의 회사에 남아야 한다는 증거가 아니다.

오히려 이제 떠나도 괜찮다고 말해 주는 증명처럼 느껴진다.

너는 이곳에서도 잘해냈다고.

낯선 사람들과 신뢰를 만들었고, 네가 떠날 때 아쉬워하는 사람을 남겼다고.

그러니 다른 길에 들어서더라도 다시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네 몫을 해낼 수 있을 것이라고.

그 선물은 아들을 붙잡아 두는 끈이 아니라, 떠나는 아이의 등에 가만히 얹어 준 손에 더 가까워 보였다.

이전 글을 쓰면서 나는 ‘근사한 사람’이란 어떤 사람일까 생각했다.

아무에게도 빌붙지 않는 사람. 불안 속에서도 끝내 자기 글을 쓰는 사람. 자신의 인생이 왜 다른 사람의 마음에 들어야 하느냐고 물으며, 남들이 정해 놓은 길이 아니라 자신의 길을 가는 사람.

오늘 나는 거기에 한 가지를 더 보태고 싶다.

근사한 사람은 자신을 사랑해 준 자리를 함부로 여기지 않으면서도, 그 사랑 때문에 자기 길을 포기하지 않는 사람인지도 모른다.

회사를 떠난다고 해서 지난 2년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곳에서 받은 인정과 사랑을 온전히 품고 다음 길로 가는 것이다. 함께 일했던 사람들에게 감사하면서도, 그 감사가 자신을 한자리에 묶어 두게 하지는 않는 것이다.

아들이 앞으로 걸어갈 길은 지금보다 훨씬 불확실할 것이다.

아무도 읽어 주지 않는 글을 쓰는 날이 있을 것이고, 거절당한 각본을 들고 돌아오는 날도 있을 것이다. 자신보다 훨씬 앞서가는 사람들을 보며 초라해질 때도 있을 것이고, 내가 과연 이 길을 갈 만한 사람인가 스스로에게 묻게 되는 밤도 있을 것이다.

영화와 드라마를 만드는 환경도 빠르게 변하고 있다. 필름에서 디지털로 넘어온 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은데, 이제는 AI가 글을 쓰고 영상을 만들어 낸다. 나 역시 아들이 선택한 길에 과연 얼마나 많은 기회가 남아 있을지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도구가 아무리 바뀌어도,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남기는 마음까지 대신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고객사가 굳이 선물 바구니를 준비해 보내고, 서른 명이 넘는 동료들이 한 사람의 마지막 날을 함께하기 위해 맨해튼에 모이는 일은 숫자와 기술만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그것은 한 사람이 다른 사람들과 함께 보낸 시간에서 생겨난다.

아들이 앞으로 써야 할 이야기도 결국 그곳에서 출발할 것이다. 자신이 만난 사람들, 함께 일하며 겪은 갈등과 기쁨, 누군가에게 고마운 사람이 되었던 경험, 안정된 자리를 떠나면서 느끼는 두려움과 해방감. 그런 것들이 언젠가 한 줄의 대사가 되고, 한 인물의 표정이 되고, 한 편의 영화가 될 것이다.

드라마의 제목처럼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며 살아간다.

하지만 적어도 오늘의 맥스에게는 자신이 가치 있는 사람이라는 작은 증거들이 있다.

분홍색 리본이 달린 선물 바구니가 있고, 아들의 마지막 밤을 함께해 주는 서른 명이 넘는 동료가 있다. 함께 일하고 싶다며 손을 내민 또 다른 회사가 있다.

그러므로 이제 아이가 싸워야 할 것은 ‘나는 가치 있는 사람인가’라는 질문이 아닐지도 모른다.

자신이 가진 가치를 어떤 문장으로 만들 것인가.

어떤 인물에게 불어넣을 것인가.

어떤 장면으로 세상에 보여 줄 것인가.

그것이 이제 맥스가 풀어야 할 문제가 될 것이다.

아들은 두 해 가까이 몸담았던 회사의 동료들과 마지막 인사를 나눴다.

그들에게는 한 동료를 떠나보내는 밤이었고, 아들에게는 익숙한 세계와 작별하는 밤이었다. 그러나 조금 떨어져서 보면, 그날은 무언가가 끝난 날이라기보다 무언가가 시작된 날에 더 가깝다.

어제 맥스는 회사를 그만두었다. 그리고 오래전부터 되고 싶었던 작가와 영화감독을 향해, 다시 첫발을 내디뎠다.

고객사가 보내온 바구니 위의 분홍색 리본은 작별의 장식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내 눈에는 그 리본이, 아들이 이제부터 써 내려갈 새로운 이야기의 첫 장에 꽂힌 책갈피처럼 보인다.

책갈피란 읽기를 멈춘 자리가 아니라, 다시 읽기 시작할 자리를 표시해 두는 물건이다.

그 분홍빛 리본이 아들에게 이렇게 말해 주는 것만 같다.

여기까지의 이야기는 충분히 근사했다고. 이제 페이지를 넘겨, 너의 이야기를 계속 써 나가도 좋다고.